운이 좋았어

기록/일기 2017. 10. 12. 01:46
두 세시쯤 커피를 살까하고 들린 편의점에 점주분이 김밥류 쪽을 채워넣고 계셨다.
이때 나는 이미 커피는 카페에서 사마실까, 저녁값이 덜어지는 셈이군 하고 마음이 기울었다.
그리고는 다른 손님이 와서 결제하니 잠시 그 등이 치워졌고 나는 빠르게 눈으로 훑어 원하던 품목이 있는지 확인했다. 없기에 다시 커피쪽이나 과자쪽을 둘러봤다. 빵이나 샌드위치 파는 쪽이 다른 쪽이라 그거라도 살까 싶어 보다가 다시 김밥쪽을 봤다.
그랬더니 그 사이에 원하는 품목을 채워놓으신 것이 아닌가!!
가볍게 커피와 샌드위치 생각을 털어내고는 그 김밥을 달랑 집어 계산대에 섰다.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었지만,음량이 1정도라 방해는 적었다. 그저 결제를 위해 멤버십을 내밀고 체크카드를 내미는 것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들었을 뿐이다.

"-네요."

이어폰 한 쪽을 빼고 되물었다.

그거요, 잘 없거든요.

하루에 두 번 김밥이 들어오는데 한 번에 두 개씩만 들어온다는 말이었다.

맛있어서요, 먹어봤어요.
운이 좋았네요.
진짜 그렇네요.

가볍게 웃고 조금 크게 외치며 돌아섰다.

수고하세요!

운이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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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 캘리그라피(필사)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달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10. 5. 00:23

사진은 캔디필름미니로 찍은 캘리그라피 사진.
241p는 김용택 시인의 꼭 한 번 필사하고 싶은 시.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중.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따뜻함이 느껴지는 시를 많이 보여줘 마음이 좋아지는 시인이다. 좋아하는 시인을 손 꼽으면 내 개인 랭크에 굉장히 순위권.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세상에,
라는 부분만으로 시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내 부끄러우면서도 설레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

두 번의 전화를 받았다.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지만, 굉장히 호의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일테고. 그 또한 내게 꽤나 호의적이다. 혹은 그 이상.
어쩌면 나와 당신은 같은 감정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대하는 사이일 것이다.
이미 그리움, 연정들을 가진 상대라는 것을 제 입으로 얘기하고 있지만.

설레고 그리운 근사하다는 앞선 전화는 좀 더 먼 곳에서 걸려왔다. 달이 떴다는 인사다. 그럼에도 설령 그대가 지금 보는 달이, 여기서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더라도 내 마음엔 환한 달이 떴으니 상관없다.
그저 간절한 그리움만큼 크고, 사무치는 연정만큼 환하니.
산 아래 그대 있는 곳의 달과 산 위의 내 마음 속 달은 같은 것이지.

세상에,를 연발하는 전화는 강변에 달빛이 곱다는 말을 전해온다. 좀 더 가까워진 마음, 어쩌면 가까워진 그대가 산 위로 오르는 중턱의 강변가에 와 내게 전화를 걸었을지도. 의식하지 않던 물 흘러가며 치대는 소리, 가슴이 트이는 소리가 귓가에 진짜 들리지 않았더라도 마음 속 달빛을 받아 빠르게 흘러가는 강물 소리는 '문득' 알아차릴 뿐이다.

달이 떠야 강변을 거닐러 나와 달빛이 곱게 부서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첫 번보다 좋은 두 번째는 그대와 내가 가까워졌다는 전화벨 소리.
울리는 것은 신호기일까, 둘의 마음일까.

'
어젯밤
나는
네 얼굴을 보려고

달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
-김용택, 달

달과 관련된 김용택 시인의 또 다른 시.
처음 캘리로 접했을 때엔 더 다른 내용이 있는 줄 알고 정말 문자 그대로 탈탈 '뒤졌는데' 끝이었다.

달빛 아래라면, 잠든 얼굴에 닿을 수 있을테니.
달 속으로 기어들어가야지.

혹은 내가 달 속으로 들어가 밤을 덮고, 눈을 감아 널 그리면, 네 얼굴을 볼 수 있을테니까.

구름 속에 가리지 않은 한가위 달은 여기 없으나, 그 곳 달빛 곱다는 연락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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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캘리그라피(필사)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9. 26. 02:03

살면서 가장 오랫동안 기다린 일이 뭐가 있을까.
그것이 그저 약속시간까지의 기별이 없어 더 기다려야하는 기다림인지, 기쁨에 가득찬 학수고대의 기다림인지, 슬픔에 가득 찬 기다림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살면서 기다리고 싶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찌보면 가장 오랫동안 기다리는 게 좋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언제까지 기다렸다고 말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만큼 그것을 기다렸으니 그 기다림을 자신이 종식시키겠다고 말하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의 말을 삼간다.

기다림은 보통 버티는 것과도 같다. 낯선 곳에 가서 정해진 배차 시간을 알지 못한 채로 기다리던 버스와 눈 앞에 쌩쌩 지나가는 택시 사이에서 번민하다 오기로라도 버스를 타고야 마는 버팀의 자세는 나 스스로와의 내기가 되고 만다. 그런 승부는 요금의 문제가 아니라면, 어느 때이고 시간의 문제에 맞춰 변통을 맞추는 게 제일 낫고.

오지 않는 너를 기다려~같은 노래 가사처럼 기다려 본 적은 없어도 대강 기다림에 대한 정의는 내린 적이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현실에서 느끼는 아쉬움, 현재 상황에서 불가한 것을 실현시키고 싶다는 욕심, 반전된 상황에 대한 슬픔,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절망, 늦어버린 깨달음, 그 외의 후회니 사죄니 하는 넋두리들. 그런 희생양들로 잘 뭉쳐진 '그리움'이라는 기다림. 옛 것에 얽매여 혹시나 하고 끝없이 희망을 기다리지만, 다 그리움일 뿐인 것.

물론 짜증남 혹은 설렘으로 가득찬 늦었으니 미안하다는 말도 못 듣고 하염없이 그저 기다리는 때도 있겠지.

이러나 저러나 내 경우는 잘 기억이 안 나서, 기다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생각나는 시나 소개하려 한다.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시집 '게 눈 속의 연꽃' 중)

교과서에 자주 실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참신한 대비로 새와 사람들을 비교하며 자유를 노래했던 모습이 이미지로 박힌 시인인데, 이 시는 내게 너무나도 사랑시로 다가왔다. 앞서 기다림이라는 것의 정의를 그리움이 범벅된 감정일 때도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렇지는 않았다. 손꼽아 기다리는 설렘이이서 기다려본 적 있었던 사람은 알 것이라는 구절이 되게 잘 읽혔다.
뭐, 물론, 80년대에 쓰고 90년에 엮어낸 이 시를 정치적으로나 다른 갈망에 엮어 기다림이라고 노래하지 않았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을테지만, 시는 또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문 열리는 순간 너라고 생각했으니 '너'였다가,
너였어야 했던 '너일 것'이었다가,
그렇게 다시 문이 닫힌다.

딱 맞추어 여유롭게 가지 않고 미리 가서 자리에 앉아 문 쪽으로 신경을 다 쏟으며 기다려 본 적이 있는, 모든 사랑을 해봤던 이들은 알 것이다. 그것은 '네가 지는 게임이야'라고 들어도 마냥 기분이 좋은 기다림이란 것을. 굳이 미리 가서 가슴 두근거리며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절절히 가슴이 저며지는 기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하루도 아닐 것이고, 길어야 몇 시간, 짧으면 몇 십분 정도일텐데. 너는 내게로 오랜 세월을 다하여 지금 여기로 오고 있다고, 그토록 내가 기다리는 이 시간이 오랜 세월 같다고 하는 말에는 절절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기다리는데, 마침내 내가 간다고 말해버린다. 천천히 오는 너를 한 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어쩌면 정말로 네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내가 가야겠어서. 너 아닌 모든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반대로 박차고 나가지 않았음에도, 이미 이 속의 '나'는 거의 '너'의 곁에 도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이 든다. 약속 시각의 정각만 되면 정말 그렇게 할 듯이 잠깐 기다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이여, 마침내 네게로 간다. 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곧 달릴 것 같은 굳센 사랑꾼의 모습이 느껴졌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가장 오래 기다렸던 것을 따지는 것보다는, 기다림의 경험들 중에 어느 것을 그렇게 '오랜 세월'로 느꼈는 지와 그 모든 발자국에 가슴을 쿵쿵 때려보았는지를 헤아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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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25

기록/꿈일기 2017. 9. 17. 12:52
이겼다고 생각하고, 그만하면 되었다 위로했다. 그랬는데, 네가 승전보를 잡아 째면 안되지. 그렇게 거칠게 나를 흔들면 안되지.

"있잖아. 나 알았어."

게임을 시작한 것도 나, 룰을 상정한 것도 나. 참여자는 둘. 시작된 것을 인지한 것은 나 하나. 어쩌면 너도 알아차린 거구나.

끝까지 모르길 바라고 시작하는 게임이다. 죽어야만 끝날, 혹은 명부가 사라져야만 좋을 것이었다. 시작부터가 그랬다.

홀로 도취한 고양감은 심장과 함께 너와 나의 마주 놓인 발가락 사이로 끌어 던져졌다. 끌어내려진 것의 무게는 박자로 치환되어 생전 잘 듣지 못했던 엇박과 휘몰이로 장단을 친다. 등줄기를 타고 올라 관자에서 박을 때린다.

기대하면서도 기대한다 절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환상이 눈 앞으로 지나갈 때, 잡지 못하는 것에 그저 한스러울 뿐이었다.

언제나 바라봐도 눈짓으로 닿기 위한 그 몸짓은 미약했을 텐데, 나는 그 몸짓을 감쌌던 연극 무대의 막을 내리고서야 비로소 네 눈 속에 내가 있는 순간을 가졌다.

긍정도 부정도 만들어내기엔 너무 찰나의 시간에 내 머릿속은, 아니 너로 가득찬 방은 무너져내린 서류철들과 비집고 나온 각종 것들을 주워담느라 바쁘다.

나를 감싸 받쳐준 팔과 지지대처럼 어둠을 뚫고 걸었던 품과 반쪽짜리 얼굴만이 아니라, 다부진 손가락의 악력과 눈가에 내려앉는 입술의 온기와 온전한 정면과 그 속 내가 담긴 눈의 접힌 주름까지 내 것으로 담아도 좋을까. 어때, 좋을까.

너도 좋을까.

너를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좋을까.

어떤 땅 위로 빛나오는 여명만이 우리를 제외한 모든 것이라는 것을 안 순간에야, 내가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고 인정했다. 황홀한 패배였다.

-이것이 전쟁이라면, 이 비루한 인간인 나 하나만을 오롯이 전리품으로 취하라 청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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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글쓰기 씀 어플 - 종이책 리뷰(후기)

기록/일기 2017. 8. 23. 21:54
지난 글 (좌클릭시 이동, http://thirstykiddy.tistory.com/45) 을 보면 신나서 쓴 일기가 있다.

어플인 인터넷 공간에서 생각한 글들로 채워 발행한 모음집을 종이책으로 만질 수 있다니. 얼마나 마음 졸이며 선착순에 들려고 했던가.

필명은 가리고.
(필명이 궁금한 분은 씀 어플에서 저 제목의 모음집을 찾아주세용)
손보다 조금 큰 사이즈로 인쇄되어 책으로 묶여왔다. 발행해준 내 손이 작은 편이니, 보통 성인 여성의 손크기가 딱 책 크기와 비교하기 좋을 것 같다.
글 30편과 여는 글과 닫는 글, 그리고 인쇄를 해준 '씀'측에서 주식회사 텐비(10B)라고 적어 제작과 지은이를 표시한 페이지까지. 페이지수 40 정도. 매수로는 20매라 얇다.
이 책에 포함된 저작물의 권리는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라고 해주어서 참 기분이 좋다. 한 권 뿐이지만, 내 책을 낸 것 같기도 하고.
선착순 20명에 들어 시범적인 이벤트로 책을 받은 입장이라 뭐 딱히 태클 걸 필요는 없지만, 그리고 이 글을 검색해볼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 피드백은 해보고 싶다.
어플에서 중앙정렬로 써서 저장했던 글 몇 개가 있었는데, 그냥 획일적으로 모두 좌정렬되어 인쇄되었다. 다른 유저들의 글 중에는 중앙정렬이 아니면 시각적인 미가 깨지는 때가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그분들은 많이 아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중앙정렬된 내 글 몇 개 중에서도 한 작품만은 중앙정렬을 노려서 썼던 게 있는데, 세심한 사람에게 보여주면 찾겠지 싶어 그냥 입맛 한 번 다시고 말기로 했다.
나중에 여러 부 뽑을 수 있게하는 기능까지도 추가되려나.
되게 기대된다. 곧 종이책 인쇄 탭이 생긴다 했으니 뭐. 유료라고 해도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조건 하에 뽑아보고 싶어질 것 같다. 이 정도 퀄이면 타협하겠다 싶어서.
주변에 똑같은 책으로 한 부씩 선물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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