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있는가

수필 2017. 7. 15. 01:21
장마의 소강이 선고되자마자, 급하게 바톤을 넘겨받는 계주 덕에 이어달리기가 속행되었다. 우리편인가 하면, 또 그건 아니어서 그냥 탓이라고 말해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이기고 지는 승부처를 판별할 변변한 위원회 하나 못 세울 관례상의 쳇바퀴통 굴리기가 또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복날, 조류독감의 우려에 해산물로 몸보신을 하겠다는 일반시민들과 삼계탕집 점주들의 인터뷰가 정오뉴스에서 번갈아 흘러나온다. 저기도 바톤터치네. 자기들은 모르겠지만.

대량으로 재워진 소불고기가 복날까지 남아있어 해치우기 위한 수단으로 당면을 넣어 전골을 만들었다. 저렴하고 합리적이라던 소비는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다 먹어야한다는 부채감을 안길 뿐이었고, 오늘도 나는 이 승부의 에이스로 발탁되었다. 삼계탕을 먹고 싶었지만, 재료를 사올 사람들은 바쁘고 내겐 요리의 능력도 없었다.  보통 외식으로 가는 게 집안의 관례였는데, 야근과 조류독감의 맞아떨어진 콜라보는 유야무야 고기면 되는거다란 말을 번지게 했다.

-이럴 때도 있는거지.

접시에는 양파즙과 어우러져 얇고 조그맣게 방울진 소기름이 젓가락질에 흔들렸다. 식용유도 올리브유도 전혀 두르지 않은 팬에 볶았는데 이렇게나 기름이 많이.

상 오른쪽에서 정중앙으로 들어온 젓가락이 두어번 오가다 멈추었다. 최후의 부스러기가 된  당면들은 작업에 돌입하여 수거당하는 중이었다.

-이거 어디꺼지?
-호주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답을 내놓았다. 이미 꽤나 전에 젓가락을 물린 사람이 말할 다음 말을 생각해본다. 그 팩에 몇 만원밖에 안하는 소고기가 그렇지, 수입산만 팔아서 그렇지, 또...

-우리 것으로 실컷 먹었으면 좋겠네.

입가심용 멧국에서 양파를 피해 미역과 오이를 건지던 손이 느릿해지는 것을 보았다. 내 손이었는데, 그것을 보는 눈은 다른 사람의 그것처럼 인식했다. 나는 답을 잠시 삼킨다. 아니, 다른 말을 골랐다. 당신이 살아온 옛 시간을 알기에. 지금의 우리의 적절한 여유에도 비할 바 못되는 시간이 있었었다는 단절은 이 최소한의 공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 시대와 그 시대가 달랐다. 단순한 기호의 피력보다 거리낌 없던 상태를 생각하는 목소리가 먼저 박혔다. 상대적빈곤은 한 집 안에서마저 존재한다.

-응. 먹으면 되지.

한우가 별거냐. 당신의 목소리에 내 목은 뜨겁고 매캐한 것으로 꽉 들어찼다. 식초에 녹아들지 못한 양파가 입속에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해볼까. 그게 좋겠지.

나는 국그릇과 브라운관만 번갈아 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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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아포리즘,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아포리즘(aphorism) 신조나 원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것, 또는 널리 인정받는 진리를 명쾌하고 기억하기 쉬운 말로 나타낸 것. -다음백과 참고

안도현 아포리즘 (책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참으로 출간일의 계절에 어울리는 표지다. 2012년 11월)

교과서에 나오는 동화 '연어'로도 익숙하고, '너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음에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라는 구절로 더 유명한 시의 저자인 안도현 시인.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짧은 세 줄만으로도 사람에게 무언가 곱씹게 만드는 문장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이 시인을 나는 좋아한다. 2000년대 이후에도 활동하는 현대 시인 중에서 좋아하는 시인을 손에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의 여러 시집이 출간되었지만, 마지막으로 읽었던 그의 에세이집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안도현 아포리즘' 이 갑자기 머리에 맴도는 것이 며칠 전의 일이었다.

저자의 에세이집은 출간된 지 얼마 안 되어, 집 앞 도서관  신간 책장에 꽂혀있던 몇 년 전 이미 빌려와 읽었다. 당시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구절을 뽑아 한글 파일로 문서화해서 저장했던 파일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라졌고, 최근에 설단현상처럼 입 속에서 혀 끝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쓰는 내가 어딘가 불쌍했다. 결국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북도 있지만 실제 책을 더 좋아하는 지라 펼쳐보기 쉽게 실물로 사기로 결정했다.

반디앤루니스 같은 대형서점에도 비치되어 있었지만 알라딘으로 향했다. 깔끔하다고 생각해서 4분의 1 가격에 사고 집에 와보니 서너장 정도의 메모가 있었다. 책의 주인도 제 나름대로의 경구를 적어내려간 흔적이었다. 이런 것이 또 중고서적의 맛 아닌가. 그 외에 파지나 더러운 흔적은 없었다.

사실 제목이기도 한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쪽은 책 겉표지에도 이렇게 실려있다. 실제 책 속에서는 두 문단이지만, 왜인지 더 시에 가깝게 보이는 편집구도다.

그냥 '안도현 아포리즘' 이라고만 제목을 붙였어도, 이름 석자의 힘으로 관심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위치다. 하지만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는 구절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이 더 동하고 마는 것이다.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례로 한비자의 책을 '한비자' 라고 이름 붙이는 것보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는 말을 제목으로 옮겼을 때의 효과는 판매부수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이 없더라도 저자의 책은 손길이 간다. 저자 소개에서 '90년대 이후 보편적인 정서를 지닌 쉬운 언어로 세상과 사물을 따뜻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설명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바다.

바람이 불고, 물결이 쳤고, 물 속의 햇살은 찰랑찰랑 아닌 차랑차랑한. 간단한 몇 글자에 때로는 웃음 짓고, 때로는 위안 받는다.

사실 계속 맴돌았던 페이지는 이것이었다. 제목이 뭐였지 라는 의문과 완벽하게 기억나지 않는 디테일이 궁금했다.
내겐 나름대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이것을 상상해보면 내가 집어든 돌멩이만큼 다시 내려앉는 돌멩이가 있을지 모르고, 그럼에도 어느 쪽에서건 자신의 행동이 계속 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미련해 보이는 돌멩이 들어올리기를 그만 두고 말아버릴 나도 아니고.

모든 잠언이 정답이 아니다. 자신만의 잠언은 남과 다를 수 있고, 제 격언 하나 새로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이 책을 오래간만에 찾은 것은 모두는 아니지만 꽤나 많이 고개 끄덕이게 하고, 곱씹게 하는 문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다른 어느 문장보다 마음에 와닿는 페이지 하나 더 소개해야지.

나 또한, 그런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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