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 캘리그라피(필사)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달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10. 5. 00:23

사진은 캔디필름미니로 찍은 캘리그라피 사진.
241p는 김용택 시인의 꼭 한 번 필사하고 싶은 시.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중.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따뜻함이 느껴지는 시를 많이 보여줘 마음이 좋아지는 시인이다. 좋아하는 시인을 손 꼽으면 내 개인 랭크에 굉장히 순위권.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세상에,
라는 부분만으로 시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내 부끄러우면서도 설레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

두 번의 전화를 받았다.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지만, 굉장히 호의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일테고. 그 또한 내게 꽤나 호의적이다. 혹은 그 이상.
어쩌면 나와 당신은 같은 감정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대하는 사이일 것이다.
이미 그리움, 연정들을 가진 상대라는 것을 제 입으로 얘기하고 있지만.

설레고 그리운 근사하다는 앞선 전화는 좀 더 먼 곳에서 걸려왔다. 달이 떴다는 인사다. 그럼에도 설령 그대가 지금 보는 달이, 여기서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더라도 내 마음엔 환한 달이 떴으니 상관없다.
그저 간절한 그리움만큼 크고, 사무치는 연정만큼 환하니.
산 아래 그대 있는 곳의 달과 산 위의 내 마음 속 달은 같은 것이지.

세상에,를 연발하는 전화는 강변에 달빛이 곱다는 말을 전해온다. 좀 더 가까워진 마음, 어쩌면 가까워진 그대가 산 위로 오르는 중턱의 강변가에 와 내게 전화를 걸었을지도. 의식하지 않던 물 흘러가며 치대는 소리, 가슴이 트이는 소리가 귓가에 진짜 들리지 않았더라도 마음 속 달빛을 받아 빠르게 흘러가는 강물 소리는 '문득' 알아차릴 뿐이다.

달이 떠야 강변을 거닐러 나와 달빛이 곱게 부서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첫 번보다 좋은 두 번째는 그대와 내가 가까워졌다는 전화벨 소리.
울리는 것은 신호기일까, 둘의 마음일까.

'
어젯밤
나는
네 얼굴을 보려고

달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
-김용택, 달

달과 관련된 김용택 시인의 또 다른 시.
처음 캘리로 접했을 때엔 더 다른 내용이 있는 줄 알고 정말 문자 그대로 탈탈 '뒤졌는데' 끝이었다.

달빛 아래라면, 잠든 얼굴에 닿을 수 있을테니.
달 속으로 기어들어가야지.

혹은 내가 달 속으로 들어가 밤을 덮고, 눈을 감아 널 그리면, 네 얼굴을 볼 수 있을테니까.

구름 속에 가리지 않은 한가위 달은 여기 없으나, 그 곳 달빛 곱다는 연락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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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캘리그라피(필사)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9. 26. 02:03

살면서 가장 오랫동안 기다린 일이 뭐가 있을까.
그것이 그저 약속시간까지의 기별이 없어 더 기다려야하는 기다림인지, 기쁨에 가득찬 학수고대의 기다림인지, 슬픔에 가득 찬 기다림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살면서 기다리고 싶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찌보면 가장 오랫동안 기다리는 게 좋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언제까지 기다렸다고 말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만큼 그것을 기다렸으니 그 기다림을 자신이 종식시키겠다고 말하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의 말을 삼간다.

기다림은 보통 버티는 것과도 같다. 낯선 곳에 가서 정해진 배차 시간을 알지 못한 채로 기다리던 버스와 눈 앞에 쌩쌩 지나가는 택시 사이에서 번민하다 오기로라도 버스를 타고야 마는 버팀의 자세는 나 스스로와의 내기가 되고 만다. 그런 승부는 요금의 문제가 아니라면, 어느 때이고 시간의 문제에 맞춰 변통을 맞추는 게 제일 낫고.

오지 않는 너를 기다려~같은 노래 가사처럼 기다려 본 적은 없어도 대강 기다림에 대한 정의는 내린 적이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현실에서 느끼는 아쉬움, 현재 상황에서 불가한 것을 실현시키고 싶다는 욕심, 반전된 상황에 대한 슬픔,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절망, 늦어버린 깨달음, 그 외의 후회니 사죄니 하는 넋두리들. 그런 희생양들로 잘 뭉쳐진 '그리움'이라는 기다림. 옛 것에 얽매여 혹시나 하고 끝없이 희망을 기다리지만, 다 그리움일 뿐인 것.

물론 짜증남 혹은 설렘으로 가득찬 늦었으니 미안하다는 말도 못 듣고 하염없이 그저 기다리는 때도 있겠지.

이러나 저러나 내 경우는 잘 기억이 안 나서, 기다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생각나는 시나 소개하려 한다.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시집 '게 눈 속의 연꽃' 중)

교과서에 자주 실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참신한 대비로 새와 사람들을 비교하며 자유를 노래했던 모습이 이미지로 박힌 시인인데, 이 시는 내게 너무나도 사랑시로 다가왔다. 앞서 기다림이라는 것의 정의를 그리움이 범벅된 감정일 때도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렇지는 않았다. 손꼽아 기다리는 설렘이이서 기다려본 적 있었던 사람은 알 것이라는 구절이 되게 잘 읽혔다.
뭐, 물론, 80년대에 쓰고 90년에 엮어낸 이 시를 정치적으로나 다른 갈망에 엮어 기다림이라고 노래하지 않았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을테지만, 시는 또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문 열리는 순간 너라고 생각했으니 '너'였다가,
너였어야 했던 '너일 것'이었다가,
그렇게 다시 문이 닫힌다.

딱 맞추어 여유롭게 가지 않고 미리 가서 자리에 앉아 문 쪽으로 신경을 다 쏟으며 기다려 본 적이 있는, 모든 사랑을 해봤던 이들은 알 것이다. 그것은 '네가 지는 게임이야'라고 들어도 마냥 기분이 좋은 기다림이란 것을. 굳이 미리 가서 가슴 두근거리며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절절히 가슴이 저며지는 기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하루도 아닐 것이고, 길어야 몇 시간, 짧으면 몇 십분 정도일텐데. 너는 내게로 오랜 세월을 다하여 지금 여기로 오고 있다고, 그토록 내가 기다리는 이 시간이 오랜 세월 같다고 하는 말에는 절절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기다리는데, 마침내 내가 간다고 말해버린다. 천천히 오는 너를 한 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어쩌면 정말로 네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내가 가야겠어서. 너 아닌 모든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반대로 박차고 나가지 않았음에도, 이미 이 속의 '나'는 거의 '너'의 곁에 도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이 든다. 약속 시각의 정각만 되면 정말 그렇게 할 듯이 잠깐 기다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이여, 마침내 네게로 간다. 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곧 달릴 것 같은 굳센 사랑꾼의 모습이 느껴졌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가장 오래 기다렸던 것을 따지는 것보다는, 기다림의 경험들 중에 어느 것을 그렇게 '오랜 세월'로 느꼈는 지와 그 모든 발자국에 가슴을 쿵쿵 때려보았는지를 헤아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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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시인 서덕준 시 캘리그라피 (혹은 필사) 2탄 -소낙비 外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8. 24. 00:00
벌써 절기가 처서로 접어들었다. 모기 입이 꺾이고, 가을이 찾아온다고 흔히들 말하는 절기. 입추는 확실히 여름 날씨였지만 요즘 아침과 저녁으로는 가을이 가까이 온 것을 느낀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이 더 좋아하는 서덕준의 시 몇 편을 더 들고 왔다. 서덕준 캘리그라피 (이전 포스팅은 좌클릭)
여름이 완전히 가기 전에, 여름인 느낌이 나는 것들로 폰 캘리그라피도 하고, 만년필이나 펜으로 필사도 하고. (사진은 직접 찍은 노을에 입힌 노트5 s노트 기능과 만년필과 제트스트림펜입니다.)

'
그 사람은 잠시 스치는 소낙비라고
당신이 그랬지요.

허나 이유를 말해주세요.

빠르게 지나가는 저 비구름을
나는 왜 흠뻑 젖어가며 쫓고있는지를요.

-서덕준, 소낙비
'

당신이 누굴까, 그 사람은 소낙비라고 말하는 화자 '나' 에게 그 사람은 순간일 뿐이니 잊으라 한 사람이 분명하다. 잊으라 했을 수도 있고, 잠시 즐겨보라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마음대로 해봐 그런데 오래 가겠어?하고 물었을지도 모르지. 확실한 것은 일회성에 그치고 말 소나기에 빗대 말한 것을 보아하니, 당신이 그 사람에게 갖는 감정이 썩 긍정적인 것 같지는 않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줄 정도인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이 인지, 애정하는 친구인지, 주변의 어른들 중 하나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나에게 밝히지는 못 하고 에둘러 '다 한 순간이야.'하는 연적일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설사 소낙비라고 해도, 그 비구름을 쫓아 거센 비를 맞아 흠뻑 젖어도 좋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여름도 소낙비가 자주 오는 해였다.

'
여름은 여러모로 당신과 닮았습니다.
어느덧 도둑처럼 찾아온다든가.
아니면 나를 덥게 만든다든가.

-서덕준, 여름증후군 中
'

도둑처럼 찾아오는 불안정한 대기권의 소낙비도, 어느새 손부채를 부치며 반팔을 찾게 되는 기온도 다 여름의 것이다. 도둑처럼 생각지도 못하게 슬그머니 나 모르게 찾아와버린 사랑과 같은 감정.

얼굴이 홧홧해지는 더위처럼 나를 열뜨게 만드는 당신은 여름과 닮아있고, 나는 당신을 보면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가 뜻대로 되지않아 분에 차서 복이 올랐다가. 식은 땀인지 뭔지가 이마께나 목 뒷덜미에서 아래로 맺혀 흐를 듯한 여름같은 당신.

'
너는 내 통증의 처음과 끝
너는 비극의 동의어이며

너와 나는 끝내 만날 리 없는
여름과 겨울

내가 다 없어지면
그때 너는 예쁘게 피어.

-서덕준, 상사화꽃말
'

상사화의 꽃말이 뭘까. 역시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러니 끝내 만날 수 없는 여름과 겨울같은.

그래도, 이제 여름과 겨울이 점점 가까워지는 곳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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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시인 서덕준 시 캘리그라피 - 멍 外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8. 5. 00:00


당신을 기어이 사랑해서 깊은 밤
당신의 가르마 사이로 별이 오가는 것을 풍경 보듯 보는 밤
당신의 장편소설을 훔쳤으나 사랑한다는 고백은 찢겨있고
나는 결국 버려진 구절이 되는 밤

당신은 새벽보다 5분 빠르고 눈물보다 많으나 바다보단 적고,
당신은 사전에 실리지 않은 그리움.
당신과 내가 하나 되는 문장을 위해서
내 모든 생애를 바쳐 시를 쓰는 밤
당신을 기어이 사랑해서 오늘도 밤이 깊다.

서덕준, 당신을 기어이 사랑해서 오늘도 밤이 깊다.

sns시인이라 불리는 서덕준 시인의 글들은 그의 인스타그램 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어떻게 이 글들을 알게 되었냐하면, 주변에서 감성글이라고 좋다며 그의 이름들을 연호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좋다고 말하는 글들은 주변의 이들이 다 제각각으로 꼽았지만, 나는 제목만으로도 이 글이 좀 머리에 박혀서 한 번 적어보기로 생각했다.
(사진은 흐린 밤 붉은 달이 뜬 날에 찍은 것. 전체를 적기엔 글씨가 너무 작아져서 부분만 실었다.)

사랑하지 않으려 해도 기어이 사랑하게 되는 마음, 또 오늘은 놓으려했건만 오늘도 포기하지 못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나는 오늘도 밤이 깊다고 한다.
당신에게서 훔쳐본 당신의 장편소설일 마음인지, 인생인지 그것에서 '나를' 사랑한다는 구절은 없었고, 나는 당신에게서 자리잡히지 못한 버려진 구절이 되었다. 나의 이름은 당신의 소설책에 실리지 못한 이름으로.
그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당신을 사랑하는 '나'.


맑은 하늘이 서서히
잿빛 구름으로 멍드는 걸 보니
그는 마음이 울적해진다고 했다.

하늘은 흐리다가도 개면 그만이건만
온통 너로 멍든 내 하늘은
울적하단 말로 표현이 되려나.

서덕준, 멍
'

온통 너로 멍든 내 하늘, 너로 꽉찬 내 하늘. 너 때문에 얼룩덜룩 흐리고 점점 물들어가는 변화무쌍한 아픈 내 하늘.

멍이 없어지기 위한 연고는 또 쉽게 구할 수가 없고, 하늘을 보며 너를 생각하는 나는 그대로 멎은 혈관줄만 멀거니 본다.

다른 친구들이 더 좋아하는 다른 시들은 다음번에 소개하기로.
서덕준 시 폰 캘리그라피는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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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학 - 첫사랑 캘리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7. 30. 21:55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까지 들여다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까지

-이운학, 첫사랑

더위에 땀을 식히려고 물을 틀어 온몸에 온수와 냉수를 뿌리다가, 생각이 첫사랑의 이름에까지 도달해서 생각나는 짧은 시를 적어보았다.
직설적으로 그 감정이나 시어에 대해 명시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건만, 나도 사람인지라 모순된 존재이고, 가끔은 그런 시도 생각나서 찾아읽고 주변에 이 시를 아느냐 물으며 추천하곤 한다.
사랑이라든가 운명이라든가 하는 무거운 단어들은 쉽게 쓰기 힘들다는 게 인식으로 박혀있다. 그래서 그것은 무섭거나 더러운 것도 아니면서 우회적으로 완곡어를 써야겠다 마음먹게 만드는 것들이다. 하지만 사랑과 첫사랑은 또 달라서 이 단어만큼은 직설적인 것만큼 와닿기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 있는 말이다.

처음에는 첫사랑의 그대가 꺾어준 꽃이 다시 필 때까지 들여다 보았다고 해서 이정하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아래 링크 클릭 시 이동)
이정하,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관련글
'찬 비에 젖어도 새 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부분과 유사하지 않나 싶어서 생각난 것이다. '꽃은 폈다가 지고, 다시 철이 되면 피니까'라며 자연처럼 반복해서 끝없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대가 남기고 갔다 했으니 이운학의 시에서도 그대는 지금 없고, 이정하 시에서의 그대도 내 곁에서 나를 사랑해주지는 않는 상황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홀로 사랑하는 상황.
그래서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들여다보며 '모란이 다시 피기까지 삼백예순날을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라고 한 김영랑이 다음해 집 뒷마당에 모란이 또 필 것을 기다리겠다고 한 것도 잠시 생각났다. (잠시 삼천포지만, 영랑생가는 제곱미터로 4000이 넘고 평당으로 계산하면 천평이 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넓은 집에 화중왕 모란이 얼마나 아름다운 군집으로 피었겠는가. 그리고 또 화무십일홍이라고 대엿새만에 져버리고 말았겠지. 섭섭해 울 만도 했다. 그렇다고 어찌 삼백예순날씩이나? 과장법이지. 이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광경을 직접 보지 못해놓고 과장으로 내리깎기에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해숴야 하지 않나.)
그렇게 꽃이 피고 지고 다시 핀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대가 준 꽃은 꺾었다하였으니 파낸 것 같지 않고, 시들 때까지 보았다하니 더더욱 옮겨심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남기고 간 시든 꽃이 다시 핀다고? 그렇게 다시 필 때까지 들여다본다니.

그 꽃은 아직 시들어있을 것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그리고 영영 다시 피진 못할 것이다.
꺾여져 더 아름답게 향기를 뿜을 기회도 박탈당한 꽃이다. 그대와 나의 사랑도 이미 꺾였다.
그럼에도 그 꽃이 필 때까지 들여다보았네 라니. 들여다보네 라고 해야 맞겠지. 여전히 봐야하니까. 피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마터면 끝까지 속을 뻔했다. 마치 그 꽃이 다시 핀 것처럼 들리는 과거형 어조에.

항상 보고있지 않더라도, 못하더라도, 이따금씩 들여다보고 있을 것을 현재에도 미래에도 확신한다.
첫사랑이란 더욱이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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