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으로 하는 캘리그라피

기록/취미 2017. 7. 11. 17:46
취미로 하기엔 좋은 도구인 갤럭시노트 5
펜이 있는 노트 시리즈의 활용도가 가장 배가 되는 때.


이정록 시인의 더딘 사랑 중.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번 하는데 한달이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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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로

창작시/자유시 2017. 7. 10. 14:15
장마라는 시기에
나는 예고치 않은 우기에 맞서려
너라는 이름의 비바람 속으로 투명한 싸구려 우산을 펼치고
기어들어가는 것이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때론 채 방비하지 못하고서
이슬비로 끝나지 않을 너의 심술을 가늠하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는 수고로움도 감수하곤 했다.

나는 오로지 그 우산 정가운데로 머리맡을 파묻고
섰다가 나아갔다가를 반복하다
오롯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리저리 내려앉는
너의 울음길을 보며 걸어가곤 하는 것이었다.

길을 걷다 마주하는 건너편의 빨간 인영이
초록 옷을 입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에 땅을 볼 찰나의 순간도 없이
막 하나를 두고 눈싸움하는 시간.

비난과 질투와 원망과 과오를 쏟아내는
너의 주장을 받아내며 또 몸을 내밀었다.

기한없는 일의 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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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아포리즘,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아포리즘(aphorism) 신조나 원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것, 또는 널리 인정받는 진리를 명쾌하고 기억하기 쉬운 말로 나타낸 것. -다음백과 참고

안도현 아포리즘 (책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참으로 출간일의 계절에 어울리는 표지다. 2012년 11월)

교과서에 나오는 동화 '연어'로도 익숙하고, '너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음에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라는 구절로 더 유명한 시의 저자인 안도현 시인.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짧은 세 줄만으로도 사람에게 무언가 곱씹게 만드는 문장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이 시인을 나는 좋아한다. 2000년대 이후에도 활동하는 현대 시인 중에서 좋아하는 시인을 손에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의 여러 시집이 출간되었지만, 마지막으로 읽었던 그의 에세이집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안도현 아포리즘' 이 갑자기 머리에 맴도는 것이 며칠 전의 일이었다.

저자의 에세이집은 출간된 지 얼마 안 되어, 집 앞 도서관  신간 책장에 꽂혀있던 몇 년 전 이미 빌려와 읽었다. 당시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구절을 뽑아 한글 파일로 문서화해서 저장했던 파일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라졌고, 최근에 설단현상처럼 입 속에서 혀 끝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쓰는 내가 어딘가 불쌍했다. 결국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북도 있지만 실제 책을 더 좋아하는 지라 펼쳐보기 쉽게 실물로 사기로 결정했다.

반디앤루니스 같은 대형서점에도 비치되어 있었지만 알라딘으로 향했다. 깔끔하다고 생각해서 4분의 1 가격에 사고 집에 와보니 서너장 정도의 메모가 있었다. 책의 주인도 제 나름대로의 경구를 적어내려간 흔적이었다. 이런 것이 또 중고서적의 맛 아닌가. 그 외에 파지나 더러운 흔적은 없었다.

사실 제목이기도 한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쪽은 책 겉표지에도 이렇게 실려있다. 실제 책 속에서는 두 문단이지만, 왜인지 더 시에 가깝게 보이는 편집구도다.

그냥 '안도현 아포리즘' 이라고만 제목을 붙였어도, 이름 석자의 힘으로 관심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위치다. 하지만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는 구절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이 더 동하고 마는 것이다.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례로 한비자의 책을 '한비자' 라고 이름 붙이는 것보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는 말을 제목으로 옮겼을 때의 효과는 판매부수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이 없더라도 저자의 책은 손길이 간다. 저자 소개에서 '90년대 이후 보편적인 정서를 지닌 쉬운 언어로 세상과 사물을 따뜻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설명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바다.

바람이 불고, 물결이 쳤고, 물 속의 햇살은 찰랑찰랑 아닌 차랑차랑한. 간단한 몇 글자에 때로는 웃음 짓고, 때로는 위안 받는다.

사실 계속 맴돌았던 페이지는 이것이었다. 제목이 뭐였지 라는 의문과 완벽하게 기억나지 않는 디테일이 궁금했다.
내겐 나름대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이것을 상상해보면 내가 집어든 돌멩이만큼 다시 내려앉는 돌멩이가 있을지 모르고, 그럼에도 어느 쪽에서건 자신의 행동이 계속 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미련해 보이는 돌멩이 들어올리기를 그만 두고 말아버릴 나도 아니고.

모든 잠언이 정답이 아니다. 자신만의 잠언은 남과 다를 수 있고, 제 격언 하나 새로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이 책을 오래간만에 찾은 것은 모두는 아니지만 꽤나 많이 고개 끄덕이게 하고, 곱씹게 하는 문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다른 어느 문장보다 마음에 와닿는 페이지 하나 더 소개해야지.

나 또한, 그런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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