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증상

창작시/자유시 2017. 8. 21. 03:08
얼마나 또 한바탕 휩쓸어 때리려는지,
낙뢰의 번쩍임은 훤히도 불꺼진 이 방을 채우는데
그 뇌성은 또 들리지가 않아 이상하다 했더랬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날개축이 맞물리는 소리 가운데
작은 부품알이 뛰놀듯 얇게 진동이 이는 선풍기를
잠시 끄고 누운 자리에서 귀를 기울여 들어본다.

여전히 들리지 않기에 어둠에 젖어드는 무거운 몸 한 켠으로 굴려
기어코 확인하기 위해 창 손잡이를 재껴 열었더니
빗소리는 없고
저 먼 산 구름이 아직은 천둥소리 들리지 않는다고 웅크려 노곤히 자는 새벽녘.

땅을 때리는 두 소리가
이 두 겹의 유리마저 뚫고 나의 졸음을 놀래키기 전에
등을 돌리는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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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학 - 첫사랑 캘리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7. 30. 21:55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까지 들여다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까지

-이운학, 첫사랑

더위에 땀을 식히려고 물을 틀어 온몸에 온수와 냉수를 뿌리다가, 생각이 첫사랑의 이름에까지 도달해서 생각나는 짧은 시를 적어보았다.
직설적으로 그 감정이나 시어에 대해 명시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건만, 나도 사람인지라 모순된 존재이고, 가끔은 그런 시도 생각나서 찾아읽고 주변에 이 시를 아느냐 물으며 추천하곤 한다.
사랑이라든가 운명이라든가 하는 무거운 단어들은 쉽게 쓰기 힘들다는 게 인식으로 박혀있다. 그래서 그것은 무섭거나 더러운 것도 아니면서 우회적으로 완곡어를 써야겠다 마음먹게 만드는 것들이다. 하지만 사랑과 첫사랑은 또 달라서 이 단어만큼은 직설적인 것만큼 와닿기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 있는 말이다.

처음에는 첫사랑의 그대가 꺾어준 꽃이 다시 필 때까지 들여다 보았다고 해서 이정하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아래 링크 클릭 시 이동)
이정하,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관련글
'찬 비에 젖어도 새 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부분과 유사하지 않나 싶어서 생각난 것이다. '꽃은 폈다가 지고, 다시 철이 되면 피니까'라며 자연처럼 반복해서 끝없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대가 남기고 갔다 했으니 이운학의 시에서도 그대는 지금 없고, 이정하 시에서의 그대도 내 곁에서 나를 사랑해주지는 않는 상황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홀로 사랑하는 상황.
그래서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들여다보며 '모란이 다시 피기까지 삼백예순날을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라고 한 김영랑이 다음해 집 뒷마당에 모란이 또 필 것을 기다리겠다고 한 것도 잠시 생각났다. (잠시 삼천포지만, 영랑생가는 제곱미터로 4000이 넘고 평당으로 계산하면 천평이 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넓은 집에 화중왕 모란이 얼마나 아름다운 군집으로 피었겠는가. 그리고 또 화무십일홍이라고 대엿새만에 져버리고 말았겠지. 섭섭해 울 만도 했다. 그렇다고 어찌 삼백예순날씩이나? 과장법이지. 이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광경을 직접 보지 못해놓고 과장으로 내리깎기에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해숴야 하지 않나.)
그렇게 꽃이 피고 지고 다시 핀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대가 준 꽃은 꺾었다하였으니 파낸 것 같지 않고, 시들 때까지 보았다하니 더더욱 옮겨심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남기고 간 시든 꽃이 다시 핀다고? 그렇게 다시 필 때까지 들여다본다니.

그 꽃은 아직 시들어있을 것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그리고 영영 다시 피진 못할 것이다.
꺾여져 더 아름답게 향기를 뿜을 기회도 박탈당한 꽃이다. 그대와 나의 사랑도 이미 꺾였다.
그럼에도 그 꽃이 필 때까지 들여다보았네 라니. 들여다보네 라고 해야 맞겠지. 여전히 봐야하니까. 피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마터면 끝까지 속을 뻔했다. 마치 그 꽃이 다시 핀 것처럼 들리는 과거형 어조에.

항상 보고있지 않더라도, 못하더라도, 이따금씩 들여다보고 있을 것을 현재에도 미래에도 확신한다.
첫사랑이란 더욱이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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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시 캘리그라피 (필사) - 낮은 곳으로, 사랑의 이율배반,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7. 27. 00:13

저 한 문장만으로도 매우 유명한 시인 이정하. 시 원문의 제목은 낮은 곳으로. 캘리를 하려니까 역시 '물처럼' 부분 때문에 바다사진을 사용하게 되었다. 건네받은 직접 찍었다는 파도치는 외국바다 사진.

좋으니까 직접 그린 그림과 캘리그라피 한 장 더. 노트5를 산 이유 중 하나는 역시 s노트로 그림도 그리고 캘리도 하기 좋아서.

너무도 유명하지만 전체를 싣자면,

'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낮은 곳으로
'

직설적으로 말하는 목소리마저 좋다.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너.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고 낮은 곳에서 너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물처럼 찰랑거리며 고여들 사랑.
사랑을 받을 수록 나의 빈 곳에는 너의 사랑으로 차오를 것이다. 차오르다가 못해 그 사랑만으로 채워질 나를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 속으로 채워지다 못해 흘러 넘쳐서, 나라는 존재를 감싸는 공간마저 잠기게 할 물처럼 흘러드는 너의 사랑을 갈구하는 '나'.
사랑은 사람을 어디까지 침잠하게 허락할 것인가.

당신의 사랑을 그렇게 받고 싶다고 말하는 절절함은 '사랑의 이율배반'에서 다른 분위기로 역전된다.

역시 벚꽃피던 계절에 직접 찍은 사진. 새 폰트를 사자마자 서체 적용해서 글을 입혔다. (dain 책방산책입니다. 예쁘죠? 사세요. 단돈 3.5)
바람에 간간이 흔들리던 꽃나무는 손 흔드는 그대와 닮았다. 내 속도 모르고.

'
그대여
손을 흔들지 마라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떠나는 사람은 아무 때나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겠지만
남아있는 사람은 무언가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가

기약도 없이 떠나려면
손을 흔들지 마라

-이정하, 사랑의 이율배반
'

이율배반. 안티노미. '논리적으로나 사실적으로 동등한 근거로 성립하면서도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두 명제 사이의 관계.'

너와 내가 있는 공간과 시간과 상황과 모습은 동등한데, 왜 너는 눈부시고 나는 눈물겨운가. 같은 사랑일까. 쌍방의 사랑이라고 먼저 말해야겠지. 그래야 이율배반이라는 이 멋들어진 철학용어가 힘을 얻기 쉬우니까.
그런데, 그래도 짝사랑이라고 봐진다. 떠나면서 내게 손 흔들어주는 그대는 눈이 부시게 웃으며 안녕!잘 있어!하고 크게 소리치고 있을 것 같아서. 혹은 너와 나의 공간인 동네이든 학교든, 나에게 그대와의 추억을 같이 한 곳에서 떠나는 상황이니. 그대가 꿈이라도 찾아간 것일까.
그대와 나는 같은 상황임에도 긍정적인 눈부심의 밝음과 눈물겨움의 슬픔으로 양분된다. 그것은 말하는 '나'에겐 사랑이니까. 기약 없는 떠남이라, 그대는 언제라도 이 곳에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오지 않겠다거나 오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이라도 했다면 남은 내가 기다리지 말자고 다짐이라도 하지. 오히려 기약없는 그 안녕은 남은 이의 기다림을 종식시켜 줄 수가 없다.

언제 볼 지는 몰라도, 또 보자는 인사는 내게도 사무치는 말이다. 내게 다가오는 뉘앙스는 그렇다.

사실 앞선 시보다 이 시가 더 먼저 발표되었다. 먼저 썼는지는 확실치 않다. 역시 유명한 시로 손에 꼽히는데, 시집 제목이 이미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니까. '낮은 곳으로'가 더 먼저 써진 것이라면 조금 더 아프지만 공감이 될 것 같다. 너의 사랑을 다 받아준다고 나를 비울 각오도 했는데, 기약 없는 이별로 눈물겨운 '나'의 뒷모습을 그리는 것. 이것은 고약한 심보겠지. 별 수 없는 개인경험의 반작용이다.

그리고 '낮은 곳으로'가 함께 실린 이후의 시집.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잉크가 부족해 나오지 않는 만년필에 다시 충전하고 시원스레 휘갈긴. 휘갈겨도 되는 분위기.

'
그대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아도 좋다.
찬 비에 젖어도 새 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그대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좋다.
말 한 번 건네지도 못하면서
마른 낙엽처럼 잘도 타오른 나는
혼자 뜨겁게 사랑하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 뿐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이정하,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짝사랑을 해본 사람으로서, 끝의 끝을 보게되면 정말 이렇게 된다. 좋아한다고, 관심이 있다고, 내 눈길이 좇고 있는 것은 그대라고 절대 말하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 한 번을 건네지도 못하면서. 있는 티 없는 티, 사랑의 기척은 다 내놓고 감정의 발산을 못 막아내놓고는 또 자기위안으로 그대에게 내 사랑을 아는 척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그것이 괜찮다의 의미겠지만, 조금 무섭게라면 '그렇게 아는 척은 안하겠다고? 그래도 나는 네가 좋은 걸.' 이렇게 말해야겠지. 짝사랑하는 사람의 자세다.
혼자 하는 사랑은 시작도 끝도 자신에게 달려있다.
한번 붙은 불길은 시도조차 하지 않아 절망감마저 맛 볼 기회 없어 눈물지을 새도 없고, 번져가기만 잘도 번져서 활활 탄다. 비에 젖고 구름이 가리어도, 새 잎이 돋아나고 별이 뜬다. 자연의 섭리대로 그대를 사랑하고 있다.
엉망진창으로 얘기해볼까. 네가 뭘하든 나의 입장에선 이 사랑이 당연하게 지속된다는 거지.

그만큼 외길 짝사랑은 홀로 완벽하다.

과연, 공감이 클 수록 내겐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시인에 속한다. 이 시들보다 덜 유명해도 훨 더 좋아하는 시가 더 있는데, 그건 이정하 시 2로 제목달고 들고 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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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시 - 무화과 숲 캘리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7. 25. 23:59

쌀을 씻다가
창 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무화과 숲

황인찬 시인의 시집 구관조 씻기기 에 실린 유명한 시
'무화과 숲'을 캘리그라피 ...라기 보다 필사했다.
백색 감성이라 불리는 그의 시들 중 이 시가 내게 가장 첫  시로 자리잡았는데, 아직까지 다른 시를 펴기 싫다.
이 시는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여린 과육 속을 파내어 부드럽게 씹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라서.

쌀을 씻다 잠시 창 밖을 보고 그 사람이 걸어갔던 숲으로 이어지는 길을 봤다. 숲이 아니라 그곳으로 가는 길. 숲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그는 숲속에서 죽었다는 얘기일까? 아니, 숲을 통해 다른 곳으로 갔을지 모른다. 그가 갔던 길을 잠시 걸을까하는 생각은 곧 먹을 저녁을 지으려고 쌀을 씻는 행위에 가로막혔을테다. 그리고 저녁을 먹어야지라며 자신의 일상을 되뇐다. 그러면서 내일은 내일 아침을 먹겠지하고 담담하게 말하는 이는 집 안에서 나가지 않고서 저녁을 먹고, 잠에 든다. 혼나지 않는 꿈. 그를 생각한다고 해서 혼나지 않을 꿈. 잠든 이가 꾼 것은 그가 숲으로 가지 못하게 막는 꿈이었을까, 아니면 그가 떠났던 그 길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꿈이었을까. 어쩌면 그저 그가 숲으로 가기 전의 둘의 추억을 되풀이하는 꿈일지도.

어쩌면 저번 시에서 소개했던 나태주 내가 너를 이라는 시와도 살짝 닮은 느낌을 받았다. 시풍, 시어가 아니라 내가 느낀 감상이 닮은. 너 없이도 너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무화과 숲으로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는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꿈을 밤마다 꾸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이미 곁에 없는 사람을 그리는 것.

내게서 태생적으로 닮아있는 그 딸꾹질 소리와 이 시가 또 닮아있어서, 나는 이 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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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 - 풀꽃, 풀꽃2, 풀꽃 3, 내가 너를.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7. 23. 23:06

이 캘리그라피 사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2012년 봄 서울 광화문 한 건물에 걸렸던 플래카드 이미지다. 기사 참조

그 이후 이 그림이 사용되어 제작된 카톡 테마도 봤었다. 간결하고 정갈해서 사용했던 기억도 난다.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

나태주 시인의 시는 간결하면서도 하고싶은 말을 다 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 말할 수 있는 역량이 되지만, 그 짧은 몇 마디로 이미 충분히 완성된 것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짧아서 잘 외워지는 것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머릿속에 잘 박히는 감성이 자리잡고 있고, 또 내게는 가슴 속에 피어나는 문장이 되었다.

이 시 이후로 나태주 시인의 다른 시를 찾아보기까지 했으니 어찌 한 손에 꼽는 그들 중 한 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굳이 찾아보지 않았더라도 지나치며 읽은 글귀에 그 이름 석자가 걸려있으면 원문을 찾아보려 마음 먹곤 했다.
물론 저 유명한 시가 풀꽃 1 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은 후의 일이다. 풀꽃 2, 풀꽃 3도 시선집에 실려있다.
나태주 시선집 - 풀꽃 은 이 링크로.

'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나태주, 풀꽃2
'
'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나태주, 풀꽃 3
'
물론 나는 위 3편 중에서는 원래 알던 풀꽃이 가장 좋다. 직접 만년필을 꺼내 손캘리를 할만큼.

여전히 너무 시원해보이는 필체. 만년필이 너무 무거운 탓을 한 번 해야지.

또 좋아하는 나태주 시인의 다른 시. 내가 너를.

손 캘리그라피 버전과

직접 찍은 사진에 텍스트 입힌 한 장. 한동안 폰 잠금화면이었다.

'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나태주, 내가 너를
'

시의 마지막 구절,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는 그 부분이 너무도 공감이 되어 한동안 먹먹해서.

이별 후에 너가 없는 상황일까, 혹은 너를 좋아한다 말하기도 전에 너와 멀어진 상황일까, 혹은 영영 간 너 때문에 너 없이도 여전히 좋아해야 하는 것일까.

다른 좋은 시는 또 다음번에 나태주 시 2라는 제목으로 포스팅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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