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시인 서덕준 시 캘리그라피 (혹은 필사) 2탄 -소낙비 外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8. 24. 00:00
벌써 절기가 처서로 접어들었다. 모기 입이 꺾이고, 가을이 찾아온다고 흔히들 말하는 절기. 입추는 확실히 여름 날씨였지만 요즘 아침과 저녁으로는 가을이 가까이 온 것을 느낀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이 더 좋아하는 서덕준의 시 몇 편을 더 들고 왔다. 서덕준 캘리그라피 (이전 포스팅은 좌클릭)
여름이 완전히 가기 전에, 여름인 느낌이 나는 것들로 폰 캘리그라피도 하고, 만년필이나 펜으로 필사도 하고. (사진은 직접 찍은 노을에 입힌 노트5 s노트 기능과 만년필과 제트스트림펜입니다.)

'
그 사람은 잠시 스치는 소낙비라고
당신이 그랬지요.

허나 이유를 말해주세요.

빠르게 지나가는 저 비구름을
나는 왜 흠뻑 젖어가며 쫓고있는지를요.

-서덕준, 소낙비
'

당신이 누굴까, 그 사람은 소낙비라고 말하는 화자 '나' 에게 그 사람은 순간일 뿐이니 잊으라 한 사람이 분명하다. 잊으라 했을 수도 있고, 잠시 즐겨보라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마음대로 해봐 그런데 오래 가겠어?하고 물었을지도 모르지. 확실한 것은 일회성에 그치고 말 소나기에 빗대 말한 것을 보아하니, 당신이 그 사람에게 갖는 감정이 썩 긍정적인 것 같지는 않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줄 정도인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이 인지, 애정하는 친구인지, 주변의 어른들 중 하나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나에게 밝히지는 못 하고 에둘러 '다 한 순간이야.'하는 연적일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설사 소낙비라고 해도, 그 비구름을 쫓아 거센 비를 맞아 흠뻑 젖어도 좋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여름도 소낙비가 자주 오는 해였다.

'
여름은 여러모로 당신과 닮았습니다.
어느덧 도둑처럼 찾아온다든가.
아니면 나를 덥게 만든다든가.

-서덕준, 여름증후군 中
'

도둑처럼 찾아오는 불안정한 대기권의 소낙비도, 어느새 손부채를 부치며 반팔을 찾게 되는 기온도 다 여름의 것이다. 도둑처럼 생각지도 못하게 슬그머니 나 모르게 찾아와버린 사랑과 같은 감정.

얼굴이 홧홧해지는 더위처럼 나를 열뜨게 만드는 당신은 여름과 닮아있고, 나는 당신을 보면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가 뜻대로 되지않아 분에 차서 복이 올랐다가. 식은 땀인지 뭔지가 이마께나 목 뒷덜미에서 아래로 맺혀 흐를 듯한 여름같은 당신.

'
너는 내 통증의 처음과 끝
너는 비극의 동의어이며

너와 나는 끝내 만날 리 없는
여름과 겨울

내가 다 없어지면
그때 너는 예쁘게 피어.

-서덕준, 상사화꽃말
'

상사화의 꽃말이 뭘까. 역시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러니 끝내 만날 수 없는 여름과 겨울같은.

그래도, 이제 여름과 겨울이 점점 가까워지는 곳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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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글쓰기 씀 어플 - 종이책 리뷰(후기)

기록/일기 2017. 8. 23. 21:54
지난 글 (좌클릭시 이동, http://thirstykiddy.tistory.com/45) 을 보면 신나서 쓴 일기가 있다.

어플인 인터넷 공간에서 생각한 글들로 채워 발행한 모음집을 종이책으로 만질 수 있다니. 얼마나 마음 졸이며 선착순에 들려고 했던가.

필명은 가리고.
(필명이 궁금한 분은 씀 어플에서 저 제목의 모음집을 찾아주세용)
손보다 조금 큰 사이즈로 인쇄되어 책으로 묶여왔다. 발행해준 내 손이 작은 편이니, 보통 성인 여성의 손크기가 딱 책 크기와 비교하기 좋을 것 같다.
글 30편과 여는 글과 닫는 글, 그리고 인쇄를 해준 '씀'측에서 주식회사 텐비(10B)라고 적어 제작과 지은이를 표시한 페이지까지. 페이지수 40 정도. 매수로는 20매라 얇다.
이 책에 포함된 저작물의 권리는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라고 해주어서 참 기분이 좋다. 한 권 뿐이지만, 내 책을 낸 것 같기도 하고.
선착순 20명에 들어 시범적인 이벤트로 책을 받은 입장이라 뭐 딱히 태클 걸 필요는 없지만, 그리고 이 글을 검색해볼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 피드백은 해보고 싶다.
어플에서 중앙정렬로 써서 저장했던 글 몇 개가 있었는데, 그냥 획일적으로 모두 좌정렬되어 인쇄되었다. 다른 유저들의 글 중에는 중앙정렬이 아니면 시각적인 미가 깨지는 때가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그분들은 많이 아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중앙정렬된 내 글 몇 개 중에서도 한 작품만은 중앙정렬을 노려서 썼던 게 있는데, 세심한 사람에게 보여주면 찾겠지 싶어 그냥 입맛 한 번 다시고 말기로 했다.
나중에 여러 부 뽑을 수 있게하는 기능까지도 추가되려나.
되게 기대된다. 곧 종이책 인쇄 탭이 생긴다 했으니 뭐. 유료라고 해도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조건 하에 뽑아보고 싶어질 것 같다. 이 정도 퀄이면 타협하겠다 싶어서.
주변에 똑같은 책으로 한 부씩 선물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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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증상

창작시/자유시 2017. 8. 21. 03:08
얼마나 또 한바탕 휩쓸어 때리려는지,
낙뢰의 번쩍임은 훤히도 불꺼진 이 방을 채우는데
그 뇌성은 또 들리지가 않아 이상하다 했더랬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날개축이 맞물리는 소리 가운데
작은 부품알이 뛰놀듯 얇게 진동이 이는 선풍기를
잠시 끄고 누운 자리에서 귀를 기울여 들어본다.

여전히 들리지 않기에 어둠에 젖어드는 무거운 몸 한 켠으로 굴려
기어코 확인하기 위해 창 손잡이를 재껴 열었더니
빗소리는 없고
저 먼 산 구름이 아직은 천둥소리 들리지 않는다고 웅크려 노곤히 자는 새벽녘.

땅을 때리는 두 소리가
이 두 겹의 유리마저 뚫고 나의 졸음을 놀래키기 전에
등을 돌리는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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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 춘향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8. 9. 01:11

지옥의 냇물도 되었다가,
도솔천의 구름도 되었다가,

소나기로 낭군님께 내릴거여요,

그때 그 그네 매달았던 소나무같이
살고 계실
다음 생의 낭군님!

거기 있을거여요!

-춘향유문 3 中

본 시를 찾아 읽고, 그 후 느낀 섬뜩함의 이유를
유교관과 불교관을 합쳐 이해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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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시인 서덕준 시 캘리그라피 - 멍 外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8. 5. 00:00


당신을 기어이 사랑해서 깊은 밤
당신의 가르마 사이로 별이 오가는 것을 풍경 보듯 보는 밤
당신의 장편소설을 훔쳤으나 사랑한다는 고백은 찢겨있고
나는 결국 버려진 구절이 되는 밤

당신은 새벽보다 5분 빠르고 눈물보다 많으나 바다보단 적고,
당신은 사전에 실리지 않은 그리움.
당신과 내가 하나 되는 문장을 위해서
내 모든 생애를 바쳐 시를 쓰는 밤
당신을 기어이 사랑해서 오늘도 밤이 깊다.

서덕준, 당신을 기어이 사랑해서 오늘도 밤이 깊다.

sns시인이라 불리는 서덕준 시인의 글들은 그의 인스타그램 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어떻게 이 글들을 알게 되었냐하면, 주변에서 감성글이라고 좋다며 그의 이름들을 연호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좋다고 말하는 글들은 주변의 이들이 다 제각각으로 꼽았지만, 나는 제목만으로도 이 글이 좀 머리에 박혀서 한 번 적어보기로 생각했다.
(사진은 흐린 밤 붉은 달이 뜬 날에 찍은 것. 전체를 적기엔 글씨가 너무 작아져서 부분만 실었다.)

사랑하지 않으려 해도 기어이 사랑하게 되는 마음, 또 오늘은 놓으려했건만 오늘도 포기하지 못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나는 오늘도 밤이 깊다고 한다.
당신에게서 훔쳐본 당신의 장편소설일 마음인지, 인생인지 그것에서 '나를' 사랑한다는 구절은 없었고, 나는 당신에게서 자리잡히지 못한 버려진 구절이 되었다. 나의 이름은 당신의 소설책에 실리지 못한 이름으로.
그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당신을 사랑하는 '나'.


맑은 하늘이 서서히
잿빛 구름으로 멍드는 걸 보니
그는 마음이 울적해진다고 했다.

하늘은 흐리다가도 개면 그만이건만
온통 너로 멍든 내 하늘은
울적하단 말로 표현이 되려나.

서덕준, 멍
'

온통 너로 멍든 내 하늘, 너로 꽉찬 내 하늘. 너 때문에 얼룩덜룩 흐리고 점점 물들어가는 변화무쌍한 아픈 내 하늘.

멍이 없어지기 위한 연고는 또 쉽게 구할 수가 없고, 하늘을 보며 너를 생각하는 나는 그대로 멎은 혈관줄만 멀거니 본다.

다른 친구들이 더 좋아하는 다른 시들은 다음번에 소개하기로.
서덕준 시 폰 캘리그라피는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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