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캘리그라피(필사)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9. 26. 02:03

살면서 가장 오랫동안 기다린 일이 뭐가 있을까.
그것이 그저 약속시간까지의 기별이 없어 더 기다려야하는 기다림인지, 기쁨에 가득찬 학수고대의 기다림인지, 슬픔에 가득 찬 기다림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살면서 기다리고 싶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찌보면 가장 오랫동안 기다리는 게 좋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언제까지 기다렸다고 말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만큼 그것을 기다렸으니 그 기다림을 자신이 종식시키겠다고 말하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의 말을 삼간다.

기다림은 보통 버티는 것과도 같다. 낯선 곳에 가서 정해진 배차 시간을 알지 못한 채로 기다리던 버스와 눈 앞에 쌩쌩 지나가는 택시 사이에서 번민하다 오기로라도 버스를 타고야 마는 버팀의 자세는 나 스스로와의 내기가 되고 만다. 그런 승부는 요금의 문제가 아니라면, 어느 때이고 시간의 문제에 맞춰 변통을 맞추는 게 제일 낫고.

오지 않는 너를 기다려~같은 노래 가사처럼 기다려 본 적은 없어도 대강 기다림에 대한 정의는 내린 적이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현실에서 느끼는 아쉬움, 현재 상황에서 불가한 것을 실현시키고 싶다는 욕심, 반전된 상황에 대한 슬픔,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절망, 늦어버린 깨달음, 그 외의 후회니 사죄니 하는 넋두리들. 그런 희생양들로 잘 뭉쳐진 '그리움'이라는 기다림. 옛 것에 얽매여 혹시나 하고 끝없이 희망을 기다리지만, 다 그리움일 뿐인 것.

물론 짜증남 혹은 설렘으로 가득찬 늦었으니 미안하다는 말도 못 듣고 하염없이 그저 기다리는 때도 있겠지.

이러나 저러나 내 경우는 잘 기억이 안 나서, 기다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생각나는 시나 소개하려 한다.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시집 '게 눈 속의 연꽃' 중)

교과서에 자주 실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참신한 대비로 새와 사람들을 비교하며 자유를 노래했던 모습이 이미지로 박힌 시인인데, 이 시는 내게 너무나도 사랑시로 다가왔다. 앞서 기다림이라는 것의 정의를 그리움이 범벅된 감정일 때도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렇지는 않았다. 손꼽아 기다리는 설렘이이서 기다려본 적 있었던 사람은 알 것이라는 구절이 되게 잘 읽혔다.
뭐, 물론, 80년대에 쓰고 90년에 엮어낸 이 시를 정치적으로나 다른 갈망에 엮어 기다림이라고 노래하지 않았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을테지만, 시는 또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문 열리는 순간 너라고 생각했으니 '너'였다가,
너였어야 했던 '너일 것'이었다가,
그렇게 다시 문이 닫힌다.

딱 맞추어 여유롭게 가지 않고 미리 가서 자리에 앉아 문 쪽으로 신경을 다 쏟으며 기다려 본 적이 있는, 모든 사랑을 해봤던 이들은 알 것이다. 그것은 '네가 지는 게임이야'라고 들어도 마냥 기분이 좋은 기다림이란 것을. 굳이 미리 가서 가슴 두근거리며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절절히 가슴이 저며지는 기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하루도 아닐 것이고, 길어야 몇 시간, 짧으면 몇 십분 정도일텐데. 너는 내게로 오랜 세월을 다하여 지금 여기로 오고 있다고, 그토록 내가 기다리는 이 시간이 오랜 세월 같다고 하는 말에는 절절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기다리는데, 마침내 내가 간다고 말해버린다. 천천히 오는 너를 한 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어쩌면 정말로 네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내가 가야겠어서. 너 아닌 모든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반대로 박차고 나가지 않았음에도, 이미 이 속의 '나'는 거의 '너'의 곁에 도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이 든다. 약속 시각의 정각만 되면 정말 그렇게 할 듯이 잠깐 기다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이여, 마침내 네게로 간다. 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곧 달릴 것 같은 굳센 사랑꾼의 모습이 느껴졌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가장 오래 기다렸던 것을 따지는 것보다는, 기다림의 경험들 중에 어느 것을 그렇게 '오랜 세월'로 느꼈는 지와 그 모든 발자국에 가슴을 쿵쿵 때려보았는지를 헤아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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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뛰드 세일 기간이라 산 것들 후기.

기록/취미 2017. 9. 16. 22:51

디어 마이 립스 톡 케이스 조녜ㅜ 핑크마블 조녜..
윗쪽 무광느낌 넘 좋아ㅜ
여리여리한 색이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해도 별수없다.

디어 마이 매트 틴팅 립스 톡!
매트립은 사랑...
색상은 오버핏퍼플! 이라는데, 발색샷을 보면

마젠타핑크에서 마젠타에 더 힘이 실린?
쫀쫀하게 발려서 각질 부각이 안되는데 뽀송해서 좋았다. 진한 색이라 각질 부각될 정도도 적긴한데... 그래도 쫀쫀함! 부드럽고!

그 외에는 저 위에 보이는 네일리무버. 코코넛 향 난다. 나쁘지 않았다. 아세톤 냄새 거의 안났어서 목적 달성.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지워줘야한다. 정성을 요하는 ㅎ.
화장도 그렇지만, 네일도 마지막 마무리와 케어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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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루즈힐 발색 및 비교 발색샷

기록/취미 2017. 9. 13. 00:16
새로..  또 버건디 느낌의 립을 질렀습니다.

이름하야 루즈힐! 뚜껑이 힐 뒷태 같지 않나요?
색상은 1호 다크달리아입니다. 입술 발색말고 비교샷으로 준비했는데,

형광등 아래여도 어찌 눈으로 본 색상에 젤 가깝게 찍어보려고 노력했어요!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클리오제품입니다. 첫 개시를 해서 저 모양 그대로 죽 내리그었네요ㅋㅋㅋ

왼쪽부터 순서를 말해보자면,
이니슾 비비드코튼잉크, 해질녘 버건디 튤립.
이니슾 글로우틴트스틱, 가을숲 달빛레드.
웻엔와일드 wet n wild, cherry picking.
에뛰드 슈가틴트밤, 블랙베리 젤리.
아리따움 쿠션틴트, 트리니티.
클리오 루즈힐, 다크달리아.
에뛰드, 겁먹은 레드.
아리따움 미러글로스틴트, 다크나이트.
에뛰드 디어달링틴트, 뱀파이어레드.

입니다!

확실히 트리니티랑 되게 비슷한데요. 하늘 아래 같은 색조는 없습니다... 미묘하게 핑크빛이랄까 푸시아느낌이 트리니티엔 있어요. 다크달리아에는 좀 더 검은걸 섞은 것 같네요!

가을엔 버건디~입니다.
전 레드계열보단 플럼이나 보라빛 느낌의 버건디가 좋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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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가을 셀프 네일 근황 + 에뛰드 네일 색상 소개.

기록/취미 2017. 9. 9. 23:12

바쁘면 투콧 정도에 장식도, 아트도 없는 초 심플한 네일 상태가 유지된다.
검정색도 아닌 은은한 펄감을 미세하게 발하는 고동빛 색상. 그리 튀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색상이라 우아하다는 평도 꽤 들었다. 물론 사람 손 색상은 천차만별이므로 케바케를 주의할 것.

블랙 포레스트라는데, 블랙까지는 안개에 둘러쌓인 새벽 어스름 되기 전 나무등걸같은 색이다. 잘 보면 갈색빛이다. 고동빛.
이 정도 이름은 확실히 양반이다, 뛰드치고는. (물론 립이나 섀도 쪽의 이름들에는 못 당해내는게 네일류ㅋㅋㅋ)

요즘 리뉴얼되기도 했지만, 바르고 있는 색상이 리뉴얼 전 색상이기도 하고. 여전히 쓰는 중이라 급 글을 써서 색상이나 소개해볼까 생각이 들었다.(뜬금포.)

이때 플레이네일 많이 샀었지... 기억으로 2년 전 이맘때 쯤이다. 쉬머링, 펄글리터, 펄시럽 등의 분류도 붙여놨는데 설명대로라 만족했었던.
왼쪽의 호수의 물안개와 꿈속의 유니콘은 느낌, 질감 모두 같은데 색상만 다르다. 이렇게 두 가지들로 징검다리로 발라줘도 예뻤지.
중간 취해버린 와인단풍은 섀도우에도 있는 색상이다. 비슷한 시즌에 나왔겠지. 그리고 둘다 조녜여신 미 뿜뿜.
네 번째는 위의 블랙 포레스트고, 마지막엔 가을 잎이 아닌 것 같아도 가을 느낌 나는데다가 헤드에 문양 느낌이 비슷해서 모아 찍었다. 홍차의 샴페인. 저것도 은은하니 예쁘다.

갈수록 할 말을 잃는 네이밍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북극의 하얀밤은 시적으로 잘 지었다 싶었다. 바코드 위의 디테일이 좋다.
마법의 블랙홀은 아마 할로윈 시즌에. 밤하늘에 별 박힌듯 까만데 챠라랑하는 펄 느낌? 그리고 그 밤하늘은 늦가을에서부터 겨울로 가는 때의 하늘이다. 확실히 할로윈 시즌 겨냥이었다.
그리고 말 많았던 은하철도 999버전ㅋㅋㅋㅋ 캐릭터 보이게 찍는다고 이름을 바로 소개 못 했는데, 눈동자는 불타오르고 와 엄마 잃은 소년 이다. 철이 지못미.
패키지에 따라 뭐가 있나? 옆의 빈티지 데님과 살구펄 시럽은 얼마나 심플하고 명시적인가ㅋㅋㅋㅋ

엄마표 생딸기쥬스와 수제산딸기잼이라는 딸기시즌 화이트데이 근처에 출시되었던 네일... 산뜻한 생딸기 레드 색상이고 , 달큰할 것 같은 으깨진 쨈 느낌이 나는 색상이다.
그 옆 반들반들한 고급스러워 보이는 느낌의 네일은 수제잼인지 청인지로 이름 지은데다가, 그런 패키징으로 스티커 붙여져서 나왔다. 여우도 포기 못한 '포도'잼이나 내 님은 '오디'에 ㅋㅋㅋㅋ센스... 과일향첨가가 실제로 된 네일이다.

끝인줄 알았더니 2015년 1월 제조 네일잌ㅋㅋㅋ 누가 봐도 발렌타인 데이 기획상품ㅎ
멘탈충전 솔티드 카라멜, 악마의 체리 가나슈, 반전매력 민트초코칩... 이 때도 왜인지 초코향이 났다. 찐한 초코향? 달다는 건 아니고 카카오 함유량 높을 듯한ㅋㅋ
아까 못 찾았던 오로라 파인트리, 블랙포레스트와 같이 맞춰 바르기 좋았던 걸로 기억.
마지막은 공상과 망상이라고 떡하니 던져놓고 다른 설명도 없다... blue가 가진 우울을 이름으로 형상화했다 치자...

아마 이쯤이 리뉴얼 전 에뛰드 네일 (매니큐어) 색상들.
다음번엔 아리따움의 모디네일이나 스킨푸드의 비타네일을 소개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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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시인 서덕준 시 캘리그라피 (혹은 필사) 2탄 -소낙비 外

마음대로 다시 읽는/시 2017. 8. 24. 00:00
벌써 절기가 처서로 접어들었다. 모기 입이 꺾이고, 가을이 찾아온다고 흔히들 말하는 절기. 입추는 확실히 여름 날씨였지만 요즘 아침과 저녁으로는 가을이 가까이 온 것을 느낀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이 더 좋아하는 서덕준의 시 몇 편을 더 들고 왔다. 서덕준 캘리그라피 (이전 포스팅은 좌클릭)
여름이 완전히 가기 전에, 여름인 느낌이 나는 것들로 폰 캘리그라피도 하고, 만년필이나 펜으로 필사도 하고. (사진은 직접 찍은 노을에 입힌 노트5 s노트 기능과 만년필과 제트스트림펜입니다.)

'
그 사람은 잠시 스치는 소낙비라고
당신이 그랬지요.

허나 이유를 말해주세요.

빠르게 지나가는 저 비구름을
나는 왜 흠뻑 젖어가며 쫓고있는지를요.

-서덕준, 소낙비
'

당신이 누굴까, 그 사람은 소낙비라고 말하는 화자 '나' 에게 그 사람은 순간일 뿐이니 잊으라 한 사람이 분명하다. 잊으라 했을 수도 있고, 잠시 즐겨보라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마음대로 해봐 그런데 오래 가겠어?하고 물었을지도 모르지. 확실한 것은 일회성에 그치고 말 소나기에 빗대 말한 것을 보아하니, 당신이 그 사람에게 갖는 감정이 썩 긍정적인 것 같지는 않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줄 정도인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이 인지, 애정하는 친구인지, 주변의 어른들 중 하나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나에게 밝히지는 못 하고 에둘러 '다 한 순간이야.'하는 연적일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설사 소낙비라고 해도, 그 비구름을 쫓아 거센 비를 맞아 흠뻑 젖어도 좋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여름도 소낙비가 자주 오는 해였다.

'
여름은 여러모로 당신과 닮았습니다.
어느덧 도둑처럼 찾아온다든가.
아니면 나를 덥게 만든다든가.

-서덕준, 여름증후군 中
'

도둑처럼 찾아오는 불안정한 대기권의 소낙비도, 어느새 손부채를 부치며 반팔을 찾게 되는 기온도 다 여름의 것이다. 도둑처럼 생각지도 못하게 슬그머니 나 모르게 찾아와버린 사랑과 같은 감정.

얼굴이 홧홧해지는 더위처럼 나를 열뜨게 만드는 당신은 여름과 닮아있고, 나는 당신을 보면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가 뜻대로 되지않아 분에 차서 복이 올랐다가. 식은 땀인지 뭔지가 이마께나 목 뒷덜미에서 아래로 맺혀 흐를 듯한 여름같은 당신.

'
너는 내 통증의 처음과 끝
너는 비극의 동의어이며

너와 나는 끝내 만날 리 없는
여름과 겨울

내가 다 없어지면
그때 너는 예쁘게 피어.

-서덕준, 상사화꽃말
'

상사화의 꽃말이 뭘까. 역시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러니 끝내 만날 수 없는 여름과 겨울같은.

그래도, 이제 여름과 겨울이 점점 가까워지는 곳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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