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아포리즘,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아포리즘(aphorism) 신조나 원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것, 또는 널리 인정받는 진리를 명쾌하고 기억하기 쉬운 말로 나타낸 것. -다음백과 참고

안도현 아포리즘 (책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참으로 출간일의 계절에 어울리는 표지다. 2012년 11월)

교과서에 나오는 동화 '연어'로도 익숙하고, '너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음에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라는 구절로 더 유명한 시의 저자인 안도현 시인.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짧은 세 줄만으로도 사람에게 무언가 곱씹게 만드는 문장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이 시인을 나는 좋아한다. 2000년대 이후에도 활동하는 현대 시인 중에서 좋아하는 시인을 손에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의 여러 시집이 출간되었지만, 마지막으로 읽었던 그의 에세이집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안도현 아포리즘' 이 갑자기 머리에 맴도는 것이 며칠 전의 일이었다.

저자의 에세이집은 출간된 지 얼마 안 되어, 집 앞 도서관  신간 책장에 꽂혀있던 몇 년 전 이미 빌려와 읽었다. 당시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구절을 뽑아 한글 파일로 문서화해서 저장했던 파일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라졌고, 최근에 설단현상처럼 입 속에서 혀 끝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쓰는 내가 어딘가 불쌍했다. 결국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북도 있지만 실제 책을 더 좋아하는 지라 펼쳐보기 쉽게 실물로 사기로 결정했다.

반디앤루니스 같은 대형서점에도 비치되어 있었지만 알라딘으로 향했다. 깔끔하다고 생각해서 4분의 1 가격에 사고 집에 와보니 서너장 정도의 메모가 있었다. 책의 주인도 제 나름대로의 경구를 적어내려간 흔적이었다. 이런 것이 또 중고서적의 맛 아닌가. 그 외에 파지나 더러운 흔적은 없었다.

사실 제목이기도 한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쪽은 책 겉표지에도 이렇게 실려있다. 실제 책 속에서는 두 문단이지만, 왜인지 더 시에 가깝게 보이는 편집구도다.

그냥 '안도현 아포리즘' 이라고만 제목을 붙였어도, 이름 석자의 힘으로 관심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위치다. 하지만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는 구절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이 더 동하고 마는 것이다.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례로 한비자의 책을 '한비자' 라고 이름 붙이는 것보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는 말을 제목으로 옮겼을 때의 효과는 판매부수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이 없더라도 저자의 책은 손길이 간다. 저자 소개에서 '90년대 이후 보편적인 정서를 지닌 쉬운 언어로 세상과 사물을 따뜻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설명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바다.

바람이 불고, 물결이 쳤고, 물 속의 햇살은 찰랑찰랑 아닌 차랑차랑한. 간단한 몇 글자에 때로는 웃음 짓고, 때로는 위안 받는다.

사실 계속 맴돌았던 페이지는 이것이었다. 제목이 뭐였지 라는 의문과 완벽하게 기억나지 않는 디테일이 궁금했다.
내겐 나름대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이것을 상상해보면 내가 집어든 돌멩이만큼 다시 내려앉는 돌멩이가 있을지 모르고, 그럼에도 어느 쪽에서건 자신의 행동이 계속 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미련해 보이는 돌멩이 들어올리기를 그만 두고 말아버릴 나도 아니고.

모든 잠언이 정답이 아니다. 자신만의 잠언은 남과 다를 수 있고, 제 격언 하나 새로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이 책을 오래간만에 찾은 것은 모두는 아니지만 꽤나 많이 고개 끄덕이게 하고, 곱씹게 하는 문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다른 어느 문장보다 마음에 와닿는 페이지 하나 더 소개해야지.

나 또한, 그런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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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길 [feat.빅이슈]

기록/일상생각 2017. 7. 2. 23:09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잠시의 숨통을 트이게 하려고 독서실을 나서 간단한 쇼핑을 하러 나온 참이었다. 마른 장마라는 소식에 꼭 들어맞게도 비는 오지 않고, 해가 지지 않은 하늘에는 빛에 반사된 하얀 구름만이 가득 깔려 하늘색을 보기 힘든 그림자 없는 날.

-영화보기 딱 좋은 날씨구만.

사실 개봉한다는 영화를 보기 위해 부랴부랴 짐을 들고 독서실을 나선 것이긴 했다. 영화를 다 보고서 느낀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이 귀가하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게 놀리고 있었다.

-돈을 얼마나 썼으려나.

지하도를 걸으며 흘끔 지갑 속 현금을 세어보았다. 최소한의 현금만 들고다니던 습관에서 미묘하게 벗어난 금액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여유가 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일로 치닫는 날짜는 새 달이 되기까지 사흘은 걸린다는 것을 똑똑히 가르쳐주고 있었으니까. 잠과의 사투로 습관이 되어버린 편의점 커피도 질릴 때가 된 말일.

지하도를 올라와서 본 것은 아직 낮의 열기가 남아 더위 아래 제자리에 붙박히고 선 상태로 빨간 유니폼을 입고 자그마한 좌판을 벌린 판매원. 고민은 짧았다. 세상이 좋아 만들어진 어플에서 버스의 도착시간은 5분도 더 남아있다가 일러주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예. 빅이슈입니다.

하며 한장으로, 혹은 여러장이었을지도 모르는, 빳빳하게 코팅된 홍보책자를 꺼내들고 말갛게 웃는 얼굴이 보였다. 네, 라는 대답으로 나는 알고있다는 말을 대신했고 빠르고 머뭇거림 없는 행동으로 지갑을 열었다. 만원짜리 한 장, 오천원짜리 한 장, 천원짜리 한 장. 그 중 누르스름한 오천원을 꺼내 건네고 커다랗게 배우의 얼굴이 인쇄된 잡지를 건네받았다.

-감사합니다. 많이 파세요.

-예예. 감사합니다.

어쩔 때는 현금이 없어서, 어쩔 때는 현금이 있더라도 내가 꼭 써야하는 곳이 있어 급하다고, 혹은 잡지를 사서 무엇할 게 있을까 하는 질문이 되돌아오는 것이 싫어 사지 않았던 때가 많았다만 이 날은 이상하게도 망설임이 없었던 것이었다.

동기들의 작은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창구들에는 한 때 붐이라도 인 것처럼 글자의 제목이 크게 찍힌 사진과 좋은 일을 했다는 어투로 쓰인 글이 하나씩 번갈아가며 올라오곤 했다. 꽤 지난 일이다. 그 때 알게 된 잡지였다. 자력갱생을 돕는다는.

이것이 나를 위한 여러가지 사치 중에 한 번은 잠시 다르게 써볼까하는 작은 유희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면죄부의 속을 거꾸로 뒤집어 쓴 얄량한 선심을 실체없는 믿음에 파는 연말의 행위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것을 못 믿는 것은 차후의 문제였고, 똑같은 빨간 냄비와 빨간 잡지가방이라면야.

가끔 지하철을 타면 옆자리 사람과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혼자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 화장을 고치는 사람, 홀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 피곤을 온몸으로 발산하며 미간에 주름을 잡고 눈을 감아 제자리를 사수하는 사람 등의 많은 인간 군상을 도와달라는 말과 꾸벅 숙이는 고개로 한 데 모아 묶는 사람이 나타날 때가 있다. 고민하는 얼굴과 관심없다는 얼굴과 귀찮다는 얼굴이 시시각각 지나가며 자신의 무릎께에 놓인 반으로 잘린 하얀 종이를 흘깃 보며 읽고 있는 모습들. 가만히 기다리면 다시 그 종이가 회수될 것을 알고 있어 가리비처럼 입을 딱 닫아버려 그 한 량의 속에는 침묵이 자리잡곤 한다. 어느 날은 기분으로 종이 위에 천원을 한 장 올려두었다. 보이지도 않는 믿음에 바치는 것은 얼마인데, 이것이 거짓일 확률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있단 믿음에 같은 한 장을 못 건낼까 싶어 조용히 회수를 기다린다. 되돌아오는

-아유, 모델 아가씨. 고마워요. 자자.

소리가 들리고, 종이가 있던 자리에 뜯지 않은 새 목캔디 곽이 놓여있다.

종점을 향해 달리는 지하철 안내방송에 묻혔을까. 사람들이 저런 빈말에 이 쪽을 쳐다본 게 아닐까. 왜 목캔디인가. 목캔디를 얼마나 들고다니는 걸까. 나처럼 천원짜리 한 장만 내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이걸로 뭔가 되는걸까.

얄팍한 의심과 단단한 신념은 쏟아지는 질문에 밀리고 일순 우울해졌던 때가 있었다. 구걸 혹은 도움이라는 판이한 단어는 잊고 물건을 산 것처럼 생각하고 잊으면 그만이라는 듯 놓여있는 포장지 반들하게 두른 연두색 곽을 들고 있던 가방 속으로 대충 푹 찔렀다. 그날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책상에 놔두고 뜯지 못한 채 며칠을 보내던 그것은 사탕이 없냐는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의 말에 먹으라며 건넸다.

-산거야?

다시 돌아오는 말에 등을 돌리지 않고 어물쩍 대답했다. 긍정이었을까 부정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몇달이나 지난 일인데. 잡지를 이왕 샀으니 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고 빅이슈가 어떤 잡지인지 설명된 글이 있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13쪽. 저 노래를 알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여러 번 읽게 되었다.

새장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는 것은 충분히 자유다. 재기와 비상이라는 단어가 거창하지 않게 만드는 것에 손 한 번 뻗어 등을 떠밀었을 뿐. 아주 작고 작은 전진을 생각하며.

저 노래가 누구를 위해 편집되었을지는 이미 무의미하다. 다시는 외롭지 않겠다- 나도 다짐하고 있으니.

순간의 엉뚱한 유희로 위안을 얻은 이 날의 잡지는 내 머릿속 어느 곳에 조금 더 크게 적혔다.   꾸준히 빠지지 않고 위안을 사지는 않겠지만, 잔잔하고 예쁜 사진과 눈이 가는 길을 막고 읽어달라 손 뻗는 글들을 새롭게 만나기 위해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언젠가 또 살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고서.

 

반질반질한 종이의 재질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눈이 편안하고 손으로 넘길 때 기분좋은 적당히 빳빳하게 힘있고 넘기기 좋은 종이에 찍힌 사진이 내 눈에는 아름다워서 한 장 더. 작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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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시/주제시 2017. 6. 29. 23:04

타닥


딱딱딱딱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그것은
어둠 속 고요에서 부유하는 숨에
또 한 숨을 더한다.

유리라는 장애에 가로막혀
그 습한 기운은 밖에서 꾸물거리고
다만 닿으면 소스라치게 놀랄 냉기만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해와의 내기에서 진 바람은
이것마저 실패할 리 없다는 듯
작은 방울 하나 하나와 함께 슬픔의 장막을 벗기려 한다.

아직 굳은 살 박히지 않은 가슴 속 한 덩이의
결 하나 하나를 헤집고 의지의 농도를 흐려버리는 찰나에
마중물이 된 것처럼 저 밑에, 혹은 속에서 역류해
또 하나의 유리에 물기가 어른거린다.

그치고 나면 부연 물때가 남을 것을 알지만
자연스레 흐려지는 창, 그리고

다시
잠기는
어둠속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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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갈

기록/일상생각 2017. 6. 9. 13:40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오히려 가슴 밑에서부터 들끓고 있는 것들을 뱉아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물기어린 슬픔이라도, 밖으로 빼내어야만 소금기 때문에 물을 찾아 헤매는 고단한 생활이 덜해질테니까요.   
목마름을 없애는 일은 짭쪼름한 그것부터 몸에서 뱉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글에 대한 제 갈증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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